2024년08월10일 6번
[과목 구분 없음]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 ①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 ② 지배자를 마립간이라고 불렀다.
- ③ 정사암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 ④ 태학과 경당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정답률: 45%)
문제 해설
정답> ④
'문화유산 기념품 제작 공모 제안서'라는 제목 아래 개요로 '수도 국내성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던 (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다음과 같이 기념품 제작을 제안합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문화유산 광개토 대왕릉비의 기념품으로 조명등이, 안악 3호분 행렬도의 기념품으로 반팔 티셔츠가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가)'는 고구려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유리왕(재위 기원전 19~기원후 18, 제2대)이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도읍을 옮김]한 것은 재위 22년인 기원후 3년의 일이다. 국내성은 오늘날 중국 만주 지린성 지안현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성은 장수왕이 재위 15년인 427년 평양(성)으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의 역할을 하였다(평양 천도). 광개토 대왕릉비가 세워진 것은 장수왕 2년인 414년의 일이다. 안악 3호분은 황해도 안악에 있는 4세기 고구려의 무덤이다(굴식 돌방무덤). 생활 풍속과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일명 동수묘(冬壽墓)로 불린다. 벽면에 적힌 묵서 명문을 통해 357년(고국원왕 27)에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고구려는 태학과 경당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국립 교육 기관인 태학에서는 귀족의 자녀를 교육하였으며 지방 교육 기관인 경당에서는 책을 읽고 활쏘기를 가르쳤다[각 소수림왕 2년(372)/장수왕 15년(427) 이후].
오답 해설>
①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한 것은 신라 원성왕 4년인 788년의 일이다[원성왕(재위 785-798), 제38대].
② 최고 지배자의 호칭이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뀐 것은 신라 제17대 왕인 내물왕 대(재위 356-402)의 일이다(따라서 원래는 '내물마립간'이 됨). 참고로 이후 지증왕 4년인 503년에 국호를 '신라'로 확정함과 함께 '(국)왕'의 호칭을 사용하였다.
③ 정사암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국가는 백제이다(천정대와 호암사지에서 정사암 회의 열림).
'문화유산 기념품 제작 공모 제안서'라는 제목 아래 개요로 '수도 국내성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던 (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다음과 같이 기념품 제작을 제안합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문화유산 광개토 대왕릉비의 기념품으로 조명등이, 안악 3호분 행렬도의 기념품으로 반팔 티셔츠가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가)'는 고구려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유리왕(재위 기원전 19~기원후 18, 제2대)이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도읍을 옮김]한 것은 재위 22년인 기원후 3년의 일이다. 국내성은 오늘날 중국 만주 지린성 지안현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성은 장수왕이 재위 15년인 427년 평양(성)으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의 역할을 하였다(평양 천도). 광개토 대왕릉비가 세워진 것은 장수왕 2년인 414년의 일이다. 안악 3호분은 황해도 안악에 있는 4세기 고구려의 무덤이다(굴식 돌방무덤). 생활 풍속과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일명 동수묘(冬壽墓)로 불린다. 벽면에 적힌 묵서 명문을 통해 357년(고국원왕 27)에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고구려는 태학과 경당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국립 교육 기관인 태학에서는 귀족의 자녀를 교육하였으며 지방 교육 기관인 경당에서는 책을 읽고 활쏘기를 가르쳤다[각 소수림왕 2년(372)/장수왕 15년(427) 이후].
오답 해설>
①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한 것은 신라 원성왕 4년인 788년의 일이다[원성왕(재위 785-798), 제38대].
② 최고 지배자의 호칭이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뀐 것은 신라 제17대 왕인 내물왕 대(재위 356-402)의 일이다(따라서 원래는 '내물마립간'이 됨). 참고로 이후 지증왕 4년인 503년에 국호를 '신라'로 확정함과 함께 '(국)왕'의 호칭을 사용하였다.
③ 정사암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국가는 백제이다(천정대와 호암사지에서 정사암 회의 열림).